용산 등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MB정부의 수습 방안을 요약하자면 형식적 법치주의 혹은 민주주의라고 말할수 있다. 법은 더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파생적 결과물이다. 법 자체가 존엄한건 아니기 때문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히틀러의 만행이 당시 합법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말한 것은 이 형식적 법치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사실 세세한 법 그 자체만을 추구한다면 의회를 장악한 다수의 횡포나 대중을 선동하여 등장한 독재자의 전제를 전혀 견제할 수 없고 오히려 형식적 통치원리로서의 법치주의가 권력자의 통치권을 강화하는데 일조하는 역기능이 생긴다. 법은 해석하기에 따라 유리한대로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할 뿐더러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식의 선별적인 법적용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체제는 속성상 자가 증식을 한다. 법률의 예를 계속 들자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 말고는(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조차도) 대한민국 법률을 전부 아는 사람은 없을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해진다. 이럴수록 체제의 기본적인 존립의미 - 개개인의 욕구를 조율해서 다수의 행복을 창출한다 - 는 퇴색되고, 체제를 기키기 위해 체제 자체가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으로 인해 '체제'만' 준수한다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면제권을 부여하는 역효과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법체계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정작 그 체제가 존중해야할 사람은 배제되고 체제만 남게 된다.
형식적 법치주의 만큼이나 IT업계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7-8년전쯤엔가 CMMI 라는 소프트웨어 성숙도라는 말이 유행한적이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그 후에도 용어만 바뀌었을뿐 유행은 존재한다.) 그 의도는 순수했지만 그 결과는 결코 좋지 못했다. 요컨데 CMMI의 조직 성숙도는 성숙도가 높은 조직은 대부분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으므로 이런것들을 보고 조직의 성숙도를 측정할수 있다는 얘기이다. 여기서의 특징은 측정되거나 산술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프로세스는 중립적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좋은 프로세스 도구를 가진 바보도 역시 바보일 뿐이다. CMMI의 최고 성숙도를 가진 NASA가 프로젝트에 프로세스당 수만장의 문서를 만든다고 해서 어떤조직에서 수만장의 문서를 만든다고 NASA와 비견한 조직성숙도를 가졌서 좋은 품질의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볼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수만장의 문서는 보다 더 추상적인 목적- 프로젝트의 성공 etc- 을 위해 어쩔수 없이 생겨난 과정으로서의 부산물일뿐 그것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저와 프로세스는 필요조건이었을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CMMI의 조직성숙도를 추구하는 조직은 높은 레벨의 성숙도를 가지기 위해서 NASA처럼 많은 문서작성을 하면 CMMI의 인증은 받을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그 만큼의 성숙도를 가졌는가는 다른 얘기이다.
흔한 얘기에 쓸데 없이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표층에 보이는 과정은 부산물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를테면 정제하고 남은 불순물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궁극의 무언가를 위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실에서 법개정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목적은 과정을 통해 달성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과정을 하는 중에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확인해야 한다. 내가 원래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이 무었이었던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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