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이야기2012. 6. 19. 22:04

지휘자는 클래식 음악에서는 작곡가와 견줄만큼 대단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조금 불가사의한 일이다.

여러가지 악기를 가진 70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은 큰 오케스트라 앞에서,
홀로 맨 앞의 단상 위에 올라서서 오른손에 가느다란 봉을 잡고 휘두른다.

확실히 곡의 시작이나 마자막의 짜잔~ 하는 음을 끊을 타이밍 등을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걸로만 보인다.

지휘자는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지휘자가 없다고 연주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지휘자에 따라 연주가 그토록 달라지는 것일까?




- 그런 질문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지휘자는 영어로 컨덕터(conductor)라고 한다.
때로는 경애를 담아 마에스트로(거장)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큰 스승님 과 비슷한 느낌이다.

현재 세계 각 도시에는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만큼 오케스트라(관현악단이나 교향악단)가 있고,
그들은 콘서트나 오페라(가극) 혹은 TV 방송, CD 녹음 등 날마다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면
반드시(가장 잘난 듯한 얼굴로) 등장하는 것이 지휘자이다.




하지만 이 지휘자라는 존재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4-5명 정도인 소 인원의 앙상블(합주)이나 코러스(합창)의 경우에는
누군가 리드하는 한 사람만 신호를 보내고 나머지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래식 음악에서도 18세기 정도까지는
작곡가가 쳄발로(키보드)를 치며 손으로 혹은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로 신호를 보내어 연주했다.

그런데 편성이 커지면서 현악기(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목관악기(플룻이나 클라리넷)와 금관악기(트럼펫이나 호른)까지 가세하여 구성이 커지자
연주하면서 서로 쳐다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앙상블을 맞취기 위해 지휘를 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것이 지휘자가 되었다.




하지만 처음의 지휘자는 전문 직업이 아니라 작곡가 겸 연주가인 악단의 리더가 그 역할을 맡아서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옛날에는 연주하고 곡도 쓰고 지휘도 하는게 음악가였다.

참고로 그 무렵(이른바 바로크 시대)에는 단상위에 서서 굵은 막대(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쳐가며 지휘를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느낌이지만 입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이라고 외칠수도 없고

지휘자가 있는 곡의 경우 대인원으로 나팔이나 큰 북이 둥둥 울리는 곡이 많았으니 그렇게 해도 그다지 방해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조용한 곡의 경우에는 역시나 쿵쿵대는 소리가 시끄러웠고,
흥분해서 힘이 들어가면 막대로 자신의 발을 찍어서 위험하기도 했다.
실제로 룰리라는 작곡가는 자신의 발을 찍었고, 그 상처가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막대로 바닥을 쿵쿵 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판명되었지만,
오케스트라처럼 50명이나 100명씩 되는 대인원이 연주하게 되면 손을 흔드는 것으로는 무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눈에 띄는 길고 흰 막대를 들고 휘두르는 방법을 생각해냈고,
이것이 지휘봉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지금처럼 지휘봉을 들고 지휘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인데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결혼 행진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유명)이 최초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이른바 낭만파의 시대가 되자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한층 복잡해진다.
악상의 변화와 함께 한곡 안에서 템포가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한창 고조됐다가 조용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아무래도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팔을 흔드는 것만으로는 쫓아갈 수 없었고
신호를 알기 쉽게 정확히 전달하는 데만도 전문적인 테크닉이 필요하게 되었다.
게다가 몇시간이나 계속 선 채로 양팔을 휘둘러야 하니 체력과 운동신경도 필요했다.

평소에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악보를 그리기만 하는 (운동부족인) 작곡가에게는 매우 감당하기 힘든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작곡도, 연주도 하지 않지만
클래식 대가들의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며

오페라 극장에서 매주 오페라를 지휘하거나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를 매달 지휘하는 지휘의 프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휘자의 역할은 음악가라기 보다는 영화 감독 혹은 야구 감독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좌우간 아무 지식없이 보고 있으면,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앞에서 음악에 맞춰 지휘봉을 휘두르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건 영화 감독이 의자에 앉아 잘난 척하며 레디 고를 외치기만 하는 걸로 보이는 것과
야구 감독이 벤치에 떡하니 앉아서 선수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만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확실히 배우나 선수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그렇게 보인들 어쩔 수 없을 수 밖에.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음악이나 연기나 스포츠의 프로들을 컨트롤해 하나로 묶어 통솔함으로써 작품 혹은 시합을 완성하여 성공이나 승리를 이끌어 낸다.

그 결과 지휘자나 감독에 따라 그다지 명곡이라 할 수없는 음악이 감동의 명곡이 되기도 하고
예산이 아주 적은 영화가 대히트작이 되거나 약팀이 일약 강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물론 그 반대도 존재하지만)

한정된 시간(이나 예산)안에서 어떻게 연주가나 배우나 선수를 활용하여 화려한 무대를 만들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조하고, 시합을 승리로 이끄는가?
그것이 지휘자나 감독의 역량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이 가리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콘서트나 영화나 시합의 본 무대가 시작되고 나면 지휘자나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다.
연주가와 배우 혹은 선수들의 활약에 전면적으로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휘자가 콘서트 본 공연에서 음악에 맞춰 지휘봉을 휘두르기만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연주하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연주가들이므로
게임처럼 명령키를 누르면 완번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버튼을 누른다고 안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액셀이나 브레이크로 조정하는 것 정도 뿐.

따라서 사실 본 무대 전의 연습이나 리허설만이 지휘자나 감독들이 제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는 곳이다.
제대로 리허설을 진행하기만 한다면 본 부대는 "준비, 시작~"만 외쳐도 충분한 것이다.





예를 들면 훈련된 프로 오케스트라라면 초보자가 지휘대에 서서 곡에 맞춰 적당히 지휘봉만 휘둘러도(혹은 춤을 추더라도)
그럭저럭 연주를 할 수 있다. (이상한 춤으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일류 스태프가 모여 제대로 훈련을 쌓은 팀이라면 가령 당신이 감독자리에 앉아 레디 고를 외치더라도 그럭저럭 해 나갈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지휘(감독)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감독은 본무대에 대비해 배우나 스태프나 선수를 선발하고,
각본이나 시함의 흐름을 음미하고, 콘티를 그려 촬영 앵글을 고려해 촬영 순서나 시간의 배분을 짜고,
다양한 트러블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합한 지시를 내리고,
배우나 선수를 혼내거나 칭찬하면서 (왜냐면 감독이 하는 말을 들어준다고 단정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연습과 리허설을 거듭해
최종적으론 그들이 힘을 완벽히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를 위해서 지휘자라면 악보를 읽어서 작품 구석구석까지 알아야만 하며,
음의 실수를 구분해 들을 수 잇는 귀와 악기나 작품에 관한 지식,
다양한 나라의 언어, 나아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역사나 음향학 등의 교양,
때에 따라서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재치까지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이  다 갖춰져야 비로서 오케스트라나 팀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휘자나 감독의 역할이다. 



from  피아노의 숲


.......

이제 "지휘자"를 "아키텍트"로 바꿔서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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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eujin